2013년 시코쿠순례

시코쿠 순례 - 32일차(11월 11일)

푸른바람을 따라서 2014. 6. 8. 21:10
어제 차고안에 아늑하게 텐트를 치고 따뜻하게 푹 자고나니 아침에 개운하다. 아침에 인사는 드리고 떠나야 할것 같아서 일정을 무시하고 좀 천천히 움직였다. 아침이 되니 따뚯한 물을 준비 해주시고 따뜻한 아침밥까지를 제공해 주신다. 모처럼 먹는 따뜻한 정이 담긴 아침밥이 너무 맛있고 감사하다. 준비해간 작은 선물을 감사의 표시로 드리고 사진을 한장 찍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출발을 한다.

차고에서 잘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고 아침까지 챙겨주신 주인내외분


부츠모쿠지가 있는 동네 모습과 하루밤 신세를 진 집의 모습


비가 개고 화창한 가을 날씨인데 바람이 많이 분다. 쌀쌀하다. 한 일킬로쯤 걸었나 아저씨가 급히 따라와 부르신다. 배낭 커버를 놓고 갔다고 전해 주시면서 오늘 슈세키지 산높다고 차로 43번절가는 길에 산넘어까지 데려다 주신다고 한다. 순례객을 생각해 주시고 배려해 주심에 감사할 뿐이다. 안그러면 오늘 슈세키지까지 어렵다고 하시며 산을 차로 넘겨주시는 오셋타이와 과일까지 싸주시며 격려 해주신다. 차를 타고 오르는 산길이 매우 가파르며, 차들도 많이 다니질 않는 도로 같다. 거기에 도로 사이로 순례길과 연결되는 산길을 보면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 이곳을 걸어 넘었다면 오후나 되어서 메이세키지에 도착을 했을 것이다. 절이 위치한 동네 입구에 내려주시며 무사히 순례를 마칠것을 기원해 주시며 배웅을 해 주신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마음과 깊은 배려를 느낄수 있었다.

차로 고개를 넘겨주신 덕분에 늦게 출발을 했지만, 제43번 메이세키지에는 예상했던 시간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메이세키지를 오르는 길에 참배를 오신 분이 불러 뒤를 돌아보니 커피한캔과 카레멜 한통을 주시며 건강하게 순례를 마치기를 기원해 주시고 격려를 해 주신다.

제43번 메이세키지 산문


제43번 메이세키지 경내


제43번 메이시키지 경내


메이세키지 본당 천정화(유명한 그림이라고 했는데 기억이 안난다)



제43번 메이세키지 경내


제43번 메이세키지 경내


제주도 보다도 아랫쪽에 위치한 시코주지만 11월 중순으로 접어드니 확연히 가을날씨를 느낄수 있다. 단풍이 물들어 마지막 화려함을 내뿜으며, 낙옆이 쌓여가는 절의 아침은 고요함 그 차제였다. 더불어 내 마음도 맑아 진다.  


메이세키지 납경을 하고 역으로 향하여 시간을 확인하니 20여분의 여유가 있어서 기차를 타기전에 슈세키지 슈쿠보 예약을 하는데 식사가 안되고 스도마리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경내에 우동집이 있으니 저녁은 우동으로 할 수 있을것이라 말씀을 해주신다. 기차를 타기전 키오스크가 있기에 아예 도시락과 간식거리를 챙겨 들었다. 20여분 기차를 타는데 기차는 도로를 따라 가지 않고 바닷가쪽으로 삥 돌아서 간다. 순례길의 풍경에서 벗어나 잠시 편안하게 풍경을 즐겨본다. 그렇게 이요오즈역에 도착하여 수세키지를 향한 산길을 걷기 시작한다. 별격영장을 가는길은 순례객이 적어서 인지 화살표가 88영장 보다는 적고 순례객도 거의 없다. 산길을 혼자 걷는다. 일본산은 항상 느끼지만 나무가 빽빽해서 햇볕이 약하다. 거기다가 오늘은 바람까지 많이 부니 산을 오르며 잠시 쉬면서 밥을먹는데 춥다. 지도에 나타난 루트를 가늠해 보다가 결국은 동행이인 스티거가 있는 표식대로 길을 잡아 나간다. 이런 산길에서 길을 잃고 헤메면 아주 낭패를 볼 수 있기에 최대한 길을 찾기 쉬운 루트로 따른다. 


슈세키지를 오르는 산길에서 바라본 풍경


슈세키지를 오르는 산의 도로


슈세키지를 오르는 급경사의 산길


슈세키지를 오르는 길에 조성된 작은 불상들


잠시 도로를 따라 오르던 길의 헨로미찌 표식이 산길로 안내를 한다. 빙빙 돌아가는 도로을 따르지 않고, 도보길은 바르게 산길로 가게 된다. 한참을 오르니 다시 도로와 만나면서 과실나무와 함께 동네가 나타난다.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더이상 버스도 운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고, 동네에 움직이는 사람조차 없다. 집들은 사람이 살고 있는것 같기는 한데 낮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개들의 짖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올라온 산길을 뒤돌아 보니 여지없이 첩첩산중의 느낌이 들도록 산넘어 산이 보인다. 양지바른 곳을 찾아 쉬면서 점심을 먹는데 날이 제법 쌀쌀하다. 가을에서 급격하게 겨울로 넘어가는듯 싶다. 그래도 날이 맑고 청명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반사경이 보이기에 셀카놀이도 좀 해보고 모처럼의 여유도 가져본다. 절에 거의 도착해 가니 마치 묘비를 세워놓은것 같은 작은 불상들이 많이 보이며, 해가 넘어가는 산속에 스산한 느낌마져 들게 바람이 분다. 고개를 들어보니 산의 능선이 제법 가까이 보인다. 높이 670미터 9키로 가까운 길을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3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이다. 늦가을의 해가 짧고 거기에 산속에서 해는 더 빨리 지는지 벌써부터 어둑어둑해 지는 느낌을 받는다. 


별격 7번 슈세키지 산문


별격 7번 슈세키지 본당


별격 7번 슈세키지 대사당


슈세키지에서 바라본 오늘 걸어올라온길


도착을해서 참배를 하는데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모녀분이 참배를 하고 계신다. 딸이 연세드신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참배를 마치고, 산아래를 내려다 보니 산위는 어둑어둑한 느낌인데 산아래 보이는 모습은 햇볕이 밝다. 역시 산속의 저녁은 빨리 찾아 온다. 참배를 마치고 납경을 받고, 슈큐보 예약을 햇다고 얘기를 하니 안쪽으로 안내를 해주시며 절의 기념품까지 챙겨주신다. 바닥난방이 되질 않는 일본의 다다미방이 확실히 썰렁하다. 석유스토브를 켜서 방안에 온기를 더해본다. 발그레한 석유스토브의 불빛이 따뜻하다. 빨래를 돌리고 난로 가까이에서 한국에서 못하고 그동안 걸으면서도 다 못한 참배에 봉납할 사경을 한다. 


경내에 우동집에 5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하여 거의 문닫을 시간 가까이 우동집엘 갔다. 따뜻한 오백엔짜리 우동 한 그릇에 온기가 있다. 아침에 몇시에 문을 여는지 여쭈어 보니 9시에 문을 여신다고 하신다. 아쉬운 표정을 지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시더니 밥에 단촛불을 양념하여 계란을 넣고 만들어 주신 내일 아침밥을 셋타이 해주신다. 너무 감사한 일의 연속이다. 내게 이렇게 감사한 일이 많아도 되는 것일까 싶다.


산위라서 바람이 많다. 창이 바람에 많이 흔들린다. 밤새 심난할것 같다. 5시가 넘으니 절도 정리하는 발걸음이 분주한 소리가 들린다. 날이 추우니 석유 스토브 앞으로만 몸을 가까이 하게 된다. 어렸을적 경험해 보고 처음 경험하는 석유 스토브다. 지금 집으로 이사전에 가스스토브는 사용을 헸지만서도 이런 사소한것 하나도 정겹게 느껴진다. 산사의 깊어가는 가을밤 한국에서도 경험해 보질 못한것을 일본에서 경험한다.


이 여행길이 많은것을 내게 주고 있다. 산속의 바람이 고요함을 깨고 창문을 계속 흔든다. 지난시간을 돌이켜보니 혼란의 정점을 찍고 5달이 훌쩍 넘어섰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오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심한 소용돌이 속에 지난 여름 한가운데 회사를 그만두고 방황하고 있던 시간들.... 이제 이 여행의 끝에서 방황을 마무리하고 순례길의 기원하는대로 내삶의 길을 열어가야 할 시점이 점점 다가온다. 어짜피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기에 걱정하지 말고 오늘 편히 쉬고 내일 열심히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