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시코쿠순례

시코쿠 순례 - 34일차(11월 13일)

푸른바람을 따라서 2014. 6. 17. 20:45

간밤에 바람소리인줄 알았던 것이 빗소리였다. 다행이 지붕이 있는 곳이어서 비는 맞지 않았고 비온뒤라 날씨가 무척 화창하다. 한시간 여를 걸어서 우치코초에 왔다. 여기서 버스로 구마코켄을 가려 했더니 구마코켄까지 직접 연결되는 버스는 없다. 걷다 보니 편의점이 보여 커피한잔 마시고, 화장실도 해결하고 나서 편의점앞에서 쉬고 있자니 젊은 트럭기사가 있기에 다시 교통편을 물어보니 아이패드를 가지고 검색을 해주더니 오다까지 가는버스가 있다고 알려준다. 그 젊은 트럭기사의 호의로 우치코 역앞에서 오다행 버스를 기다렸다. 마쓰야마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구마코켄행 버스를 타라고 권유 하기에 괜찮다고 했다. 우선 교통편이 너무 도는 길이고, 교통요금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여기서 반나절 거리인 오다까지만 버스타고 가서 쉬고 거기서 하루거리인 다이호지 넘어가서 다이호지 앞에서 하루 노숙하고 이와야지까지 간 다음에 후루이야와에서 나머지 일정을 고민 해야겠다. 교통편을 이용하더라도 시골에 드물게 있는 대중교통이라 크게 일정을 당기지는 못할것 같다. 다만 몸이 좀 편안하게 움직인다는것. 신발에 대한 고민을 좀 덜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역앞에서 오다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가을 햇볕이 따뜻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자켓을 입고 장갑까지 꺼냈다. 이곳도 겨울이 오는것일까? 다리에 누적된 피로는 걷는 속도를 계속 떨어트리고 있으며, 밤에 휴식을 취해도 근육도 피로도 풀리질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2시간정도 걸으면서도 발바닥의 고통이 매우 크다.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 보니 모든것들이 여유있게 한가롭게 보인다. 역시 내 마음이 여유가 있어야 주변도 그렇게 보이는가보다.


아침에 걸으면서 문득 내가 현실도피차 이곳에서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짜피 모든것이 진행된 사실이고 무엇인가를 내가 결정해서 바꿀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제부터 앞길에 대한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어짜피 시작한 순례길. 이길을 마무리하고 순례길에서 얻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귀국해서 내 삶을 찾아가는 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보리의 에히메라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무엇인가 앞길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듯 하다. 그렇게 한참을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자니 내가 이렇게 여유를 가져본게 언제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를 하고 이곳에 있게했는지....


도보순례를 마음먹고 왔는데 몸에 조금씩 무리가 오고, 날도 생각보다 빨리 추워지고 하니 내 합리화을 위한 핑계거리를 만드는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도 된다. 그래도 일단 좀 편히 쉴 수 있는 마쓰야마 까지는 빨리 가보자. 볕이 참 좋다. 일본 도착 했을때만 해도 여름더위 같은 날씨에 치쳤는데 지금은 볕이 따스하다. 환경이 변화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지는 나의 태도를 느낀다. 그리고 길위에 삶이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오다까지 버스를 타고와서 식당에서 다라이 우동으로 점심을 먹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우동을 사먹었다. 식당에서 와이파이가 되기에 메일을 확인하니 아버지께서 메일을 보내셨다. 나도 한심한 놈이지. 해외 나와 있으면서 한달이 넘도록 한번을 전화 안드리면서 나는 후일에 무엇을 기대 하겠는가? 시간이 너무 일러서 오다초에 있는 대사당에서 노숙을 접고 구마코켄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휴게소에서 노숙을 하는것이 좋을것 같아,  먹을거리를 동네 슈퍼에서 준비하여 구마코켄으로 넘어가는 산길로 접어 들었다. 과연 고원을 향하는 길은 높다. 가도가도 계속되는 구비구비 오르막 길이다. 


오다초에서 구마코켄으로 넘어가는 산길의 작은 일본마을


두시간을 넘게 걸어 고개마루에 있는 휴게소가 있다. 주변에 화장실도 없고, 식수도 없고 얼마나 통행량이 없으면 그 흔한 자판기 하나도 없다. 주차장엔 낙엽만 바람에 휩쓸릴 뿐이다. 휴게소에 도보순례객이 한사람 쉬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순례중이라고 한다. 결혼도 했다고 했는데, 다들 사연없는 사람이 이 순례길에는 없는것 같다. 산속의 해는 짧다. 4시가 가까워오니 해가 벌써 넘어가려 한다. 일본 순례자는 구마코켄에 예약한 숙소까지 간다고 한다. 해가 질텐데 걱정을 하니 렌턴이 있다고 하며 출발을 한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해결한다. 라면과 햇반이 추운날씨에 요긴하고 간편한 식사거리다. 거기다가 즉석카레까지 활용하니 편리하고 시간도 절약되고, 설겆이 거리도 줄어든다. 내일아침도 같은 메뉴로 해결하고 내일 구마코켄에 생협이 있으니 내일 점심은 좀더 잘 먹을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비록 길위에 삶일 지라도 이렇게 라도 맘편히 한몸 쉴수 있는것이 어딘가 싶다. 씻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해도 말이다. 


오늘낮에 한가롭게 햇볕을 쪼이며, 과연 이런 여행의 기회가 나에게 다시 주어질까? 나이 먹어 은퇴하면 가능할까? 그때는 이만큼의 체력도 받쳐주지 않을테니 어려울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저녁을 대충 해결하고 텐트에 들어오니 춥다. 기온이 떨어진데다 산속이라 더 추운듯 하다. 거기다가 밤이 되니 바람도 강해진다. 발도 무척 시렵다. 대충 불티슈로 닦고 침낭을 덮고, 포켓난로를 셋팅하여 집어넣었다. 따뜻해 진다. 내일 아침에는 오늘보다 더 추울것 같다. 확실히 산속은 산속이다. 


이 방황도 끝내고 몸과 마음이 의탁할 곳을 만들어야 하는데 싶은 생각이 더 든다. 어디에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을 더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