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시코쿠순례

시코쿠 순례 - 27일차(11월 6일)

푸른바람을 따라서 2014. 5. 27. 20:44

아침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는데 오늘 묵을 장소를 물어 보신다. 나카스지와댐 못미쳐 우메노키 공원에서 노숙 할것이라 말씀을 드리니 끓여먹는 라면을 하나 내주시며 점심은 오니기리를 싸주시고, 저녁은 라면이라고 아주 유쾌하게 말씀을 하신다. 짐을 챙겨 또 길을 나설 시간이다. 비록 하루를 머무른 곳이지만 마치 오래있던곳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본사람이 정이없다고 하더니 꼭 그런것만은 아닌것 같다. 


오늘도 새벽에 바라보니 멀리 수평선쪽으로는 해무와 함께 구름도 끼어 있어서 맑은 하늘에 일출은 보질 못했다. 너무나도 아쉬운 고치현의 남태평양 바닷길이다. 겨울에나 와야 그런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나중에 이곳을 한번더 찻을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 준것이라고 아쉬움을 달래본다.


이제 부터는 방향이 북쪽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서쪽으로 산을 향해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약간 그리고 남쪽으로 이어지며, 무로토곶을 지나서는 서쪽으로 아시즈리 곶을 벗어나니 북쪽으로 향하며 이제 고치현도 내일이나 모레면 끝이 난다. 에이메현에 진입을 하면 이제 시코쿠 섬을 가로지르는 산줄기를 넘고 바다를 끼고 돌며 바다로 지는 석양을 바라볼 것이고 동지가 가까워 올수록 점점 일출은 늦어지고 일몰을 빨라 지며, 그만큼 낮에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걷는거리도 조금씩 짧아길 것이다.


오늘 넘어야 할 산이 멀리 보인다.


무엇이던지 처음에는 힘이 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습관이 되어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을 하게 된다. 이길도 마찮가지 같다. 처음엔 언덕과 산길이 힘들었지만 날이 지날수록 매일 고개하나, 산하나는 넘는 것이 습관이 되어 간다. 그리고 그런 길이 없으면 무엇인가 허전하고 아쉽다. 습관이 되어간다. 이젠 산하나 넘는것은 머 그러려니 한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체력이 좋아지긴 했다. 그런데 오후 3시가 넘어가면서 기울어 지는 해를 바라보면 심리적으로 불안해 진다. 그리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면서 몸이 늘 힘들다. 먹는것에서 오는 것인지 휴식 없이 걷는것이 문제인지 도통 모르겠다. 순례를 시작하면서 이상하게도 어디에서 자던지 간에 9시면 무척 졸립고 잠들면 새벽 3시경에는 꼭 깨고 그리고 뒤척이다가 잠들면 6시에도 일어나기가 힘들다. 긴장때문일까. 노숙을 하면 더 심해진다. 야도리스트를 보면 댐앞에 우메노키 공원전에 불피우고 전기 사용하기 좋은 곳이 있다고 소개를 하고 있지만 그 우메노키 공원에 도착을 해서 보니 비록 전기가 없지만 수도물과 버너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기에 야도리스트에 소개한 곳 까지 걷기가 싫어져서 그대로 우메노키공원에 주저 앉았다. 지난밤 구모모에서 만났던 뉴질랜드 순례자는 먼저 도착해서 텐트까지 치고 있다


뉴질랜드 순례자 텐드 가벼워 보인다.


순례에 대한 이런 저런 안통하는 얘기를 하다가 집을 물어보니 이곳이라고 한다. 잘못 들었는지 싶어서 다시 This? 하고 되물어 보니 Sure.

아니 머 이런 황당한 대답이 있을까? 지금 머물고 있는고 그리고 자신의 텐트가 집이라는 대답에 혼란스럽다. 당황해 하는 나를 보더니 이상할 것 없다는 제스추어를 취한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젊은사람들 처럼 마약도 안하고, 술도 많이 안마시고 생활한다고 얘기한다. 내가 나이를 많이 먹어서 세대차를 느끼는 것인가? 아니면 문화가 다른데서 오는 사고 방식의 차이인가? 혼란 스럽다.


연락한번 없는 가족들이 아쉽다. 먼저 연락 안하는 나도 마찮가지란 생각이 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녀니 생각하기로 했다. 나도 똑같이 그렇게 행동을 했는데 누굴 탓하겠는가?


날이 어두워져 불을 끄고 음악을 듣고 있는데 동행이인 카페의 쥔장이신 희야시스님께 문자가 한통 날라온다. 무척 반가웠다. 12월 6일에 오사카에서 헨로상들과 모임이 있다고 참석 할 수 있는냐도 물어 보시기에 6일 이전에 순례를 마치게 되면 참석 하겠다고 답을 드렸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빠듯하게 마치던가 아님 중간에 한두번 기차라도 타면 여유있게 마칠 수 있는 일정이 될것 같다.


내일은 또 비예보가 있다. 또 얼마나 비가 내릴지 모르겠다. 이젠 빗방울이 조금만 내려고 아예 카메라는 꺼내 들리조차도 싫다. 왜 DSLR을 무겁게 들고 왔는지 모르겠다. 그놈의 사진욕심땜에 그랬는데, 이제는 똑딱이 카메라가 그립니다. 순례를 마치고 나면 DSLR을 가지고 온것을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모든것은 상황에 따라 바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