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늦게 마신 커피한캔으로 늦게까지 잠을 못이루고 거기에다가 10월에 마지막밤이라는 느낌에 감상에 젖어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는데, 새벽 일찍부터 환기휀 소리에 잠을 깻다. 무시하고 좀더 자고 싶다. 그런데 환기구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생선 굽는 냄새가 너무 좋다. 집에서 아침에 먹기 위해 생선을 구울때 딱 그 냄새다. 소소한 작은 즐거움들을 이렇게 길바닥에서 더욱 절감한다. 텐트안에서 뭉기적 거리기엔 휀소리가 너무 크고, 거기에다가 생선굽는 고소한 향기가 한없이 배고프게 만든다. 어제 남아있던 빵과 바나나를 커피한캔과 함께 씹어 넘긴다. 밥하는것도 귀찮고, 편의점은 보이질 않는다. 쌀쌀한 아침에 라면하나 끓여서 밥 말아 먹으면 딱 좋겠는데 아쉽다. 아마도 미치노에키가 문을 열었다면 주저하지 않고, 들어가서 저 생선과 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을것 같다.
6시가 다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어둑하다. 길을 나서기엔 조금은 부담스럽다. 6시에 출발해서 작은 산을 하나 넘으니 탁 트인 전망이 무척 시원하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된것이 그 흔한 자판기도 하나 안보이고, 편의점이나 동네의 작은 가게도 하나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세시간정도를 걸으니 헨로미찌가 산으로 안내를 한다. 하루라도 산을 오르지 않으면 이제 발바닥에 가시가 생길것 같다.
일본산은 확실히 한국산과 다르게 숲이 무척 울창하고, 경사도 급하다. 비록 등산로를 잘 정비해 놓았어도 길이 무척 힘들다. 산길을 오르니 이번엔 고속도로가 떡하니 길을 가로 막으며, 고속도로 아래로 계단이 이어진다. 그러더니 다시 무지막지한 오르막 계단이 펼쳐진다. 차라리 그냥 산길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고속도로를 만들면서 헨로미찌를 없애지 않고 보존한 것은 좋지만 너무 힘들다. 거기다가 산이지만 길을 정비해 놓은 곳엔 나무가 하나도 없어 그늘조차도 없다. 놓여있는 벤치는 뜨겁다. 하지만 계단을 다 오르고 내려다 보는 모습이 나름 매력이 있다. 현대의 고속도로, 1,200년 이어져온 헨로미찌와의 공존 하는 길이다.
고개마루에서 보이는 시원한 풍경
고속도로로 인해서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에 올라서 바라본 지나온길
배가고파질 무렵에 나타나야할 편의점이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없어진듯 하다. 틀림없이 편의점 이었던 듯한 부지는 보이는데 건물이 없다. 그옆에 있어야할 식당도 문을 닫은것 같다. 지도가 오래되긴 한 모양이다. 아침에 그 좋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끼더니 빗방울이 약간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예보는 없었는데 무슨 가을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한국의 가을과는 다른 모습이다. 아니면 이제 11월이 되었으니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라서 그런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점심시간을 넘겨 걷다 보니 작은 슈퍼가 보이기에 배낭을 팽개치고, 들어가서 가쓰오 다다끼와 복음밥을 하나씩 집어 들고 계산하고 나와서 주차장에 퍼져서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머니 연세의 지긋한 분이 지나가시면서 맛있냐고 불어 보신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다. 맛있다고 대답하고 주변을 살보니 슈퍼앞 주차장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는 모습과 주변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와모토지 가기전 고개를 오르는길에 멀리 자전거를 탄 순례자가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이 보이기에 큰길로 그대로 쭉 올라가라고 소리를 질러 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시원스레 올라간다. 자전거가 부럽다. 고개를 넘어 한시간쯤을 더 걸으니 이와모토지 이정표가 보인다.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몸은 급작스럽게 더 힘들어지고, 걷기도 싫어진다. 아침의 활기찬 발걸음, 오후시간의 지쳐가는 발걸음, 저녁 무렵의 스러져가는 발걸음에 발에서 전해져 오는 고통은 더욱 커진다. 그렇게 걸어 겨우 이와모토지에 4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을 하였다.
제37번 이와모토지 입구
제37번 이와모토지 산문
이와모토지에 도착을 하니 아까 길을 알려 주었던 자전거 순례자가 쉬고 있다. 그리고 반갑게 맞이해 준다. 자기도 츠야도에서 머물 예정이라고 하기에 같이 츠야도로 향하였다. 그런데 왜 이와모토지 경내의 사진이 하나도 없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이와모토지의 츠야도는 주차장에 붙어 있는 차고를 내어준다. 옆에 화장실도 있다. 화장실 옆으로 난길로 들어가보니 근사한 휴게소 같은 건물이 하나 있다. 여름 같으면 이곳에서 노숙도 괜찮지 싶다
츠야도에 같이 머물게된 순례자는 선원이며 통신사 이다. 한국사람이 군대가는것에 관심이 많은것 같다. 거기다가 대학때 한국인 동기가 있어서 제법 한국문화에 익숙하며, 한국음식도 잘 알고 있다. 영어가 통하니 나름 대화도 되고 저녁을 사러 가서도 삼겹살과 김치까지 구입해 왔다. 난 내가 먹을 음식만을 준비를 하였는데, 그 순례자는 나를 배려해서 상추에 삼겸살과 김치를 구입해서 요리까지 해주며 권한다. 내생각만한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하기까지 하다. 이런것이 배려일 것인데 난 그저 일본사람들의 개인적 성향만 생각하고 내것만 구입하고 식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모든것을 역시 섣불리 일반화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긴절히 든다.
아직도 새로산 신발이 발에 적응이 안되는지 발도 계속 아프다. 그리고 무슨 신발창이 이리 빨리 닳는지. 하긴 많이 걷기고 있긴 하다. 제발 일본에서 창을 교체하는 일반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36번절을 출발하여 이틀일정을 맞추었다. 다음절까지는 거의 80킬로가 넘는 일정이다. 약 3일 거리인데 4일 일정을 볼까 싶다. 오전을 걷고나면 온천이 있고 이후에는 해변도로 일정이다. 잠잘곳이 참 마땅지가 않다. 바다가 휴게소가 있긴하다.
38번절을 무거운 짐을 가지고 약 30킬로 넘는 일정을 왕복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코스 이면서도 시코쿠 최남단 아시즈리미사키라는 매력도 있는 곳이다. 어짜피 짐의 무게는 포기하고 적당히 물만 구할 수 있으면 되니깐 음료수 자판기등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움직여 봐야겠다. 아즈리히곶을 기점으로 고치현도 점점 마무리가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태평양의 일출을 볼수 있는날도 아즈리히곶까지의 일정이 마지막이 될것이다. 항상 구름에 가려서 해가뜬 이후에 모습만 봤는데 앞으로 3일 에서 5일안에 맑은날의 일출을 볼수 있기를 바란다. 무로토곶은 처음 맞이하는 곶이었는데 태풍때문에 힘들게 지나치는 아쉬움이 너무 컷다. 이젠 날씨도 좋으니 아즈리히 곶은 그렇게 지나치고 싶지는 않다.
내일은 토요일이다. 집 생각도 나고 보고 싶기도 하다. 지금 츠야도 같이 묵고 있는 동행의 말처럼 걱정하지말고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하자. 이틀째 제대로 씻지를 못하니 답답하다. 이젠 이런것도 적응이 될때도 되었것만 쉽지 않다.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꼭 밤 9시쯤면 졸리고 자다가 보면 밤 11시쯤 잠을 깬다. 그리곤 1시 넘어까지 뒤척이다기 새벽녘에나 겨우 잠이드니 이것도 참 문제다. 11시에 잠을 깨서 또 12시가 넘도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같이 츠야도를 쓰는 일행 때문에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도 차고의 셧터를 올리고 가야해서 못가고 버티고 있다. 답답하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이 깊은 밤의 적막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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