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시코쿠순례

시코쿠 순례 - 52일차(12월 1일)

푸른바람을 따라서 2014. 9. 7. 00:28

길위에서 산지도 두달이 다되어 간다. 10월에 시작해서 이제 12월이다. 마지막 절에 참배를 위해서 아침일찍 길을 나섰다.6시인데 아직도 밖은 캄캄하다. 이른시간 아침을 먹고 배낭은 숙소에 놔둔채로 납경장과 점심거리만 챙겨서 오타키지로 출발을 한다. 민슈크 주인아주머니께서 10여킬로를 차로 데려다 주시고 32킬로는 걷는 일정이다. 945미터 산위에 있다. 차로 데려다 주시면서 오는길을 꼼꼼히 알려 주신다. 산의 입구에 있는 가보가와소 앞까지 데려다 주시기로 하였는데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니 거기거 좀더 안쪽까지 데려다 주신다. 그렇게 배웅을 받으며 아직은 어둡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산길을 채촉한다. 날이 추워질수록 짧아지는 낮시간에 시작부터 마음이 조급해 진다.


서서히 날이 밝아 오는데 보니 도로공사가 한참이다. 이런 산속 깊은곳까지 새롭게 도로를 내고 있다. 그 덕분에 현장사무소가 있고 인부들을 위한 자판기가 눈에 띄인다. 순례자들에겐 이런곳의 자판기가 매우 유용하다.


동행이인 카페에 일정에 대해 질문을 올리니 이곳을 다녀가셨던 분들의 한결같은 얘기가 근처에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일본에서 흔한 자판기 하나 없으니 꼭 음식과 물을 챙기라는 말과 함께 도착해 보면 산정상에 작은 절만 하나 있어 황량하기 그지 없다고 얘기들을 하였는데, 오타키지 까지 가는 도중 산속에 있는 몇 안되는 민가들은 비어있는 집같았고, 중간에 있는 휴게소는 더이상 영업을 하지 않고 폐쇄되어 있었으며, 지나가는 차량도 딱 2대를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오타키지에 다다라 절옆에 있는 신사도 아무도 거주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고, 방문객도 없어 보이며 휑하고, 마치 귀신이라도 튀어나올듯한 분위기이다. 그러니 산아래에서 오타키지까지는 먹을것을 구할곳도 물을 얻을곳도 없었다. 길을 걷는내내 깊은 산중의 고요함이 내 순례길의 마지막에 전체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보내라고 배려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고, 산속에서 길을 걸으며 지난 50일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새벽에 내리던 비는 날이 밝아오면서 점차 그치더니 화창하고 맑은 날씨이다. 산을 올라 갈 수록 날은 점점 더 쌀쌀해 진다. 오타키지를 향하는 길은 산은 높지만 모두 포장된 도로여서 그런지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아스팔트를 걷는 피곤함이 많다. 도로를 따라 산을 오르는 길이 일반적인 루트 같다. 이 산의 넘어쪽 댐이 있는 곳으로 오면 거리는 줄긴 하는데 마지막 5Km정도의 급한 경사의 산길을 오르는 루트가 있지만 거의 다니질 않아 길의 흔적이 없을것이라고 들었던 얘기가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사람의 왕래가 없는 길이다. 


산정상부근의 도로엔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 있다.


별격 제20번 오타키지 입구


별격 제20번 오타키지 대사당(바로 오른쪽이 납경소이다.)


별격 제20번 오타키지 본당


참배와 납경을 마치니 이제 108개의 절들의 모든 순례를 끝냈다. 그런데 어제 오쿠보지에서 처럼 감동은 없다. 아무래도 어제 88개소의 결원에 대한 감동으로 오늘은 반감되었지 싶은 생각도 들고, 오쿠보지는 절의 규모와 많은 사람들의 서로간에 축하 인사 등이 분위기를 더 만들어 주는데 반해 오타키지는 고요함을 넘어서 적막하기 까지 하니 아마도 시끌벅적 하게 축하를 받는 결원의 절이 아니라 지난 순례를 스스로 돌아보고 의미를 생각하며 마무리 하라는 그러한 곳이지 싶다.


별격 제20번 오타키지 경내


별격 제20번 오타키지 종루(종루뒤의 계단을 오르면 신사가 하나 있다)


참배를 마치고 납경을 마치니 스님께서 오차와 과자등을 챙겨 주신다. 납경을 받고 보니 사경한 노트를 놔두고 와서 납경소에 부탁하여 깨끗한 백지를 한장얻어 대사당옆의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서 급하게 반야심경을 사경하는데 자꾸만 손이 곱아 든다. 추운 날씨에 어쩔수 없다. 별격의 절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아 절을 둘러보고 말고 할것도 없이만 오타키지는 특히나 더 하다. 높은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작은 절하나. 자그마한 본당과 대사당. 다른절들 처럼 절의 분위기도 마땅치 않는 작은 절. 그러나 따뜻한 스님이 계시고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은 산사이다.


산정상에서 바라보는 능선들


산정상을 거의 다 올라 있는 휴게소, 물과 음식만 있으면 노숙도 가능할것 같다.


아주 드물게 만나는 오타키지 이정표


오타키지를 향하는 갈림길


지도에 휴게소 표시가 있는 곳인데 더이상 영업은 하지 않는듯 하다


산길의 갈대들


오타키지를 향하는 숲길


점심때가 가까워지면서 햇볕은 점점더 따사로워지며 하산길을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 햇살에 빛나는 갈대의 황금빛과 빼곡한 나무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의 부드럽고 따사로운 느낌이 좋다.


산을 거의 내려오니 지도에 있는 사누키온천이 개울건너로 보인다. 제법 비싸보이는 온천이다. 거기서 작은 마을을 지나 한시간여를 더 걸으니 가보가와소 입구이고, 큰길과 만난다. 마을을 지나는 길에도 작은 상점도 볼 수가 없다. 마을안까지 들어가 보질 않아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고요한 길이다. 


가보가와소를 지나 큰길과 만나는 갈림길에 문닫은 상점이 보인다. 꼬박 5시간을 넘게 왕복했다. 나가오지 앞에서 출발을 했더라면 이곳에서 하루를 자고 오타키지를 다녀오던 아니면 산위에서 노숙을 하던지 둘중 하나를 결정했어야 할것이다. 야소쿠보 주인아주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쿠보지 앞에서도 하루길이 어려웠을 것 같다. 여름이면 그나마 좀 낳을수 있겟지만 해가 짧은 겨울에 하루에 왕복은 무리라고 판단이 된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그동안 아껴두었던 전투식량과 핫팩을 챙겨 들고 나오길 잘 했다. 햇볕이 잘 비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전투식량에 물을 붓고 핫팩에도 물을 부어 따뜻한 점심을 만들어 먹었다.


짐없이 걷는데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 다리가 피곤하고 아프다. 버스정류소가 보여 그곳에서 바람을 피하며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쉴만큼 쉬고 일어나는데 입에서 집에가자 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돌아갈때가 왔다 보다 싶다. 이곳은 시코쿠의 외진 시골 마을이고 지금 내가 가는 곳은 내 짐을 놓고 나온 오늘 하룻밤을 묵을 민박집인데 왜 그런 말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는지 모를일이다. 비록 하루 지만 그곳을 집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보면 텐트 칠곳을 미리 생각하거나 젠콘야도 그리고 민박 등에 예약을 해 놓으면, 그곳에 마치 누가 기다리고 있는것 처럼 달려가지 않았던가. 비록 아무도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는 사람도 없는 곳 이었지만 그곳에 자리를 잡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편해졌던가. 길위에서 지내는 생활에서 비록 오늘 하룻밤이지만 그래도 갈곳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후쿠시마에서 왔다는 순례자가 생각이 난다. 그의 고향집은 원전으로 죽음의 땅이 되어 돌아갈 곳이 없다고 했다. 그사람 무사히 순례를 마쳤을까? 그리고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88번절로 돌아오는 길에 뒤에서 "Hi, Long time no see" 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 보니 우탕구라에서 같이 숙박했던 이안과 재회를 했다. 우탕그라에서 하루 더 쉬고 온다고 했었는데, 오늘 오타키지를 다녀오며 88번절인 오쿠보지 앞에서 하루를 더 묵게 되니 만나게 되었다. 반갑게 서로의 결원을 축하를 하고 앞길에 좋은일만 있기를 빌어 주었다. 이안은 츠야도를 얘기 하는데 오쿠보지에는 츠야도가 없다고 얘기를 하니 추운날씨에 500미터가 넘는 산에서 노숙을 해야할 상황이다. 많이 추울텐데 염려가 된다. 그래도 오늘부터는 바람도 덜불고 기온도 좀 올라가고 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추운날씨에 노숙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따뜻하고 편안하게 쉬고 배낭의 무게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몸에 무리가 덜온다. 어제 잠을 설치고 오늘은 많이 걸었더니 피곤하다 저녁을 먹고 방에서 그대로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한시간 정도가 흘렀다. 이제 내일 산을 내려가서 별격영장을 순례하며 모은 염주알로 염주를 만들고, 츠야도나 젠콘야도에서 하루 자고 모레에 료젠지에 참배를 하면 시코쿠의 모든 일정을 끝이난다. 이후에 교토의 토지와 고야산을 참배하고, 6일은 오사카의 오임에 참석하는 것으로 대강의 일정을 마무리 할 것이다. 잠이 꺠고 나니 이런 저런 많은 상념들이 생기며 쉽사리 잠이 오질 않는다. 어제 밤에도 이렇게 잠을 설쳤는데 오늘도 비슷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