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순례 - 46일차(11월 25일)
한쪽이 건물벽에 막힌곳인데도 산위로 불어 오는 바람이 강하다.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밤새 들린다. 2시간 정도를 자고나면 다리 근육이 아파서 잠을 깬다. 아파서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 더이상 잘 수가 없어서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나보니 밤새 비가 내린 흔적이 남아있다. 화장실에 세수하러 가는데 빗방울이 다시 날리기 시작한다. 태풍은 아닌데 가을비가 자주 내린다.
주차장에 있던 구입하고싶은 충동이 일었던 경차 캠핑카(작은사이즈에 있을것은 모두 있었다)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정리를 하고 나니 비가 더욱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다. 어제 만났던 준페이가 어제 커피에 이어 오늘은 아몬드 한봉지를 건넨다. 고맙고 미안해서 커피 한캔으로 마음을 대신한다. 그리고 후다에 내 한국연락처와 이메일을 적어서 건네주며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해 달라고 말하며, 사진을 한장찍었다.
운펜지 츠야도와 미치노에키 후레아이파크 미노 만난 준페이(꼭한번 다시 만나고 싶다)
날이 밝아 오는데도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아 우의를 챙겨 입고 이야다니지가 있는 산위로 향한다. 경사진 입구에 다다르니 504계단이라는 안내문에 이른아침부터 한숨이 몰려온다. 그래도 한걸음씩 오르다 보면 결국은 도달할 길이다.
계단을 오른끝에 보이는 제71번 이야다니지 산문
대사당은 납경소와 함께 있고, 본당까지는 계단으로 한참을 올라야 한다. 계단에서 안개낀 미요토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요토시
제71번 이야다니지 본당오르는 계단엽의 탑과 불상(죽은 영혼을 위한 불상이라고 한다)
제71번 이야다니지 계단아래서 바라본 본당
제71번 이야다니지 본당오르는 계단옆 공간들에 조성된 불상들
제71번 이야다니지 본당오르는 계단옆 공간들에 조성된 불상들
제71번 이야다니지 본당오르는길의 동굴불당
제71번 이야다니지 오래된 건물에 오래된 범종 하나
제71번 이야다니지 대사당, 납경소, 오쿠노인이 있는 건물
제71번 이야다니지 대사당 건물내부
제71번 이야다니지 대사당에서 바라본 납경소
제71번 이야다니지 오쿠노인 가는복도(오쿠노인은 촬영불가)
본당과 대사당에 참배를 하고 둘러보다 보니 대사당 뒷편이 오쿠노인 석실이다. 삼배를 올렸다. 납경소에서는 노스님께서 직접 납경을 해주신다. 납경을 마치고 돌아나오는데 계속 비는 오락가락 한다. 계단을 모두 내려오니 만다라지를 향하는 산길이 이어진다.
야마다니지에서 만다라지를 향하는 대나무숲길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있는 숲길을 한참을 걷다가 갑자기 밝아지며 시야가 탁 트이며 저수지와 저수지 옆에 그림같은 집한채가 서있다. 부러운 광경이었다. 한번쯤은 살기를 꿈꾸어 왔던 그림 이다. 고향은 시골이지만 도시생활에 익숙한 내가 과연 이러한 곳에서 한적함과 고요함을 즐기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길을 걸으며, 몇일의 산길에는 도시를 그리워 하고 번잡한 도심에서는 이러한 한적함을 그리워하는데 말이다.
어둑한 숲길을 벗어나서 나타는 저수지와 그림같은 집한채
산길을 벗어나니 비도 그치도 날도 제법 개이고 있다. 햇볕이 비치면서 도로의 물기가 마르며 습한 기운이 올라오는것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비가 그치고 햇볕이 비추는것이 좋다.
아침, 저녁을 2,980엔에 숙박은 무료인 식당(오후 늦게였다만 들렸을것 같다)
국도와 만나는 길에 차량통행이 많다. 에히메현 보다도 더욱 차량의 통행이 많은것 같다. 햇볕이 비추기에 우의를 정리해서 넣고 걷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비를 다 맞으며 만다라지에 도착을 하였다. 현대적인 느낌도 좀 나면서 깨끗한 모습을 보이는 절이다.
제72번 만다라지 산문
제72번 만다라지 본당
제72번 만다라지 대사당
제72번 만다라지 종루
제72번 만다라지 경내
제72번 만다라지 경내
납경소엘 가니 절이 스님을 닮은것인지 스님이 절을 닮은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정결한 느낌을 주시는 스님께서 납경을 해주신다. 납경을 마치고 경내에 귤 무인판매대가 있어 귤을 한봉지 구입해서 먹으며 계속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오늘 숙소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본다. 그러다가 문든 젠쯔지의 슈쿠보를 센유지에서 안내 받았던 기억이 스쳐 젠쯔시 시내의 2500엔 도미토리 보다는 낮겠다 싶어서 만다라지에서 스님께 예약을 부탁을 드리니 흔쾌히 예약을 해 주신다. 만다라지에서 만다라를 창문으로 넘겨보며 가까이서 친견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배낭을 만다라지에 맡기고 슈세키지로 향했다.
슈세키지는 만다라지에서 불과 20분 거리에 있었으나 오르막 경사가 제법이다. 슈세키지를 오르면서 보니 멀리 산위에 오쿠노인이 보인다. 공해대사가 어릴때 서원을 세우고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있는 의미있는 오쿠노인이다. 비바람이 너무 거세다 보니 올라가볼 엄두도 못낸다. 그런데 내가 과연 날씨가 맑고 좋았다면 올라갔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슈세키지에 가니 절의 뒷편에 오쿠노인을 바라보며 참배소가 마련되어 있어 그곳에서 참배를 대신 하였다.
제73번 슈세키지 본당과 대사당
제73번 슈세키지 경내
제73번 슈세키지 오쿠노인 참배소
73번절에서 자동차 순례를 도시는 가족이 참배를 하고 있다. 나도 한옆으로 비켜나 참배를 하고 나니 그 가족중에 한분께서 봉투를 하나 가방에 넣어 주신다. 그러더니 무사히 순례를 잘 마치길 기원하며 황급히 떠나신다. 비도오고 외국인 헨로라서 우동값 정도를 넣은 오셋타이 겠거니 하고 보니 봉투를 꺼내보니 마음"심(心)" 자가 선명한 봉투에 만엔이 들어있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떠나고 없다. 이런 큰 금액을 이렇게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한것도 드린것도 없는데 말이다. 당황스러웠다. 이런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하나 싶다. 그동안 길을 걸으며 뜻하지 않았던 오셋타이들이 마음이 큰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아귀의 마음으로 오셋타이를 기대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다. 금액이 주는 감동이 더 컷을수도 있지만 남에게 보시를 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할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니 느끼게 한다. 그동안 길을 걸으며 받았던 오셋타이들이 영화의 필름처럼 머리속에서 지나쳐 간다. 특히 다이니치지의 무용을 전공하며 묘선스님과 합께 지내고 있는 유나씨가 생각이 난다. 남에게 베풀며 배려하며 살아가는 삶이 존경스럽다. 갈수록 빗줄기는 거세어 진다. 어짜피 슈큐보를 예약했기에 비가 오던 말던 그냥 될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교야마지를 향한다.
교야마지에 도착을 하니 새롭게 세운듯한 입구가 뭔가 부조화 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제74번 교야마지 본당
제74번 교야마지 대사당
제74번 교야마지 비사문천
제74번 교야마지 경내
교야마지는 순례길을 따르면 뒷문으로 들어가서 정문으로 나오는 구조이다. 새로 지은듯이 보이는 산문이 웅장하다. 그리고 그 산문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아주 즐겁게 동영상을 촬영하며 시코쿠 순례를 즐기고 있었다.
오후가 되어 가면서 빗줄기는 점점 사그러 들어 간다. 그래도 가랑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오늘은 절과 절 사이의 거리가 멀지않아 비는 오지만 틈틈이 비를 피하며 휴식을 할 수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젠쯔지에 도착을 하나 공해대사 탄생지 그리고 총본산 답게 절의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도시의 이름도 젠쯔지시 이다. 젠쯔지시 경찰서, 젠쯔지시 세무서, 젠쯔지역 등등 마치 모두 절에서 운영하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틀전 간온지에서도 그랫듯이 말이다. 예전에 천리교의 본산인 천리시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젠쯔지에 도착을 해서 참배를 마치고, 납경을 한 이후에 예약해 놓은 슈쿠보에 짐을 놓고 별격 17번인 칸노지를 가기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걸으려고 보니 왕복 6시간이 넘는 일정으로 걷기는 포기했다. 기차를 타고 역에 도착을 해서 길을 물어보니 젊은 여자분이 알고 있다고 길안내를 자청한다. 25살의 밝고 유쾌하며, 미인이기까지한 여자분이다. 그런데 왜 이름을 들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안나는지는 모르겠다. 본인이 가는방향이 비슷해서 길만 알려주는줄 알았더니 집앞에 이르더니 급하게 집에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절까지 동행을 자청하고 나선다. 뜻밖이었다. 혹시나 부담이 될까봐 극구 사양을 해도 괜찮다고 하며 동행을 자청한다. 조금 걷다보니 만노이케가 나타난다. 공해대사가 직접 건설한 저수지인데 살짜기 안개까지 끼어 있고, 도로에는 비에 떨어진 낙옆까지 깔려 있어 아주 아름다운 길이다. 같이 길을 걷는데 왜 그리도 내 발걸음이 빨라지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여유있게 아름다운 길을 즐기며 걸어도 되는데 이상하게 길을 급하게 서두르게 된다. 사진도 급하게 찍어 촛점이 모두 흔들린것 밖에 없고, 정말 아름다운 저수지 풍경의 사진은 없다. 아마도 길안내를 해 주시는분의 시간을 뺏는 것이 미안하여 괜시리 마음이 급해졌던것은 아닌가 싶다.
만노이케
별격 제18번 칸노지 앞의 만노이케
별격 제18번 칸노지 입구
별격 제18번 칸노지 본당
오며가며 2시간이 넘는 길을 즐겁고 유쾌하게 걸었다. 데이트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즐거웠다. 짐을 모두 젠쯔지의 슈큐보에 놓고와서 무엇을 주고 싶은데 마땅히 줄것이 없다. 참배를 하면서 후다 한장 건네어 적게하고, 향도 하나 건네 주고 같이 참배를 하였다. 그리고 나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적은 후다를 주며 서울에 올 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 해 달라고 당부를 하였다. 이렇게 받은 은혜를 갚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호의까지 베푼다. 너무 미안해서 사양을 하고 기차를 기다리면 된다고 하였는데 여행기를 쓰는 지금 생각을 해보니 그 핑계로 유명한 콘피라 신사도 같이 들리고, 젠쯔지에 와서 무엇이라도 기념이 될만한것을 하나 주었어야 하는데 라는 후회도 남는다. 이제 25살이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기원 한다.
일정은 얼마 남지를 않았는데 준비한 기념품이 아직 여유가 있다. 오셋타이를 받으면 드리려고 가지고온 선물이 그동안 그저 말로 때우고 지나친 모양이다. 그렇게 여자분과 헤어지고 역앞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동집이 보인다. 기차시간이 많이 남고, 춥고 배도 고프고 해서 들어가 우동한그릇을 청했다. 따뜻한 국물이 온기을 온몸에 보내준다. 우동을 먹으면서도 길안내를 해준 분이 생각이 난다. 차라리 이럴줄 알았으면 이 우동이라도 한그릇 대접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우동을 먹고 역에서 한시간 넘게 기차를 기다리는데 비에 젖은 몸은 춥고 발은 더욱 아프다.
젠쯔시 슈큐보에 돌아와 체크인을 하는데 역시 절이크고 직원들이 많으니 센류지와는 다르게 모든게 사무적이면서 뭐랄까 좀 정이 없다고 해야 할것 같다. 슈쿠보에 짐을 풀고나니 젠쯔지 근처의 젠콘야도가 떠오른다. 항상 리스트에서 봤떤 젠콘야도가 왜 이제야 떠오를까? 비를 흠뻑맞고 걸은 오늘 부처님과 대사님께서 편안한 숙소에서 쉬라고 슈쿠보가 먼저 떠오르고, 젠콘야도는 이제서야 생각이 나는 것일까?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다리를 주물러 주니 발도 덜 아프고 근육도 좀 풀린다. 오늘은 유달리 엄지 발가락이 아프다. 신발도 비에 젖으며 발을 조여오는 느낌이 든다.
남은 일정이 일주일 남짖이다. 빨리 귀국하고 싶은 욕심에 일정을 많이 당기려고 노력을 했는데 오늘 문득 날자를 헤아려 보니 여유가 많다는 생각도 든다. 수리를 보낸 신발을 찾아서 가려면 어짜피 두주일은 필요한데 고야산과 교토 그리고 12월 6일에 오사카에서의 모임까지를 계산하면 신발의 수리를 보낸것이 딱 두주일이다. 그전에 신발창 교체가 완료되어야 일정을 당길수 있을 것인데 안그러면 오사카와 교토의 체류일정이 길어지니 난감한 문제가 될것 같다. 내일 오사카의 후배에게 연락해서 확인을 좀 해봐야 할것 같다.
간노지를 왕복하면서 중간에 콘피라 라는 신사가 굉장히 유명하다는데 기차로 움직이니 그냥 지나쳤다. 아쉽기는 하지만 관광객 모드도 아니고 특히나 일본에 올때 마다 느끼지만 신사는 이상하게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동하질 않는다. 순례일정이 마무리 되어가는 이제서야 참배하는 절에서 받는 느낌이 생겨간다. 처음엔 그저 참배와 납경 이외엔 보이질 않았고 가가와현에 다가올수록 절에 대한 소감이 늘어난 일기를 보게된다. 일기의 패턴이 변했다. 이래서 다시 찻아올 생각을 하는걸까? 젠쯔지에 참배를 하는데 본당인 금당의 본존을 공개하고 있고 대사당도 무척 화려하며 규모는 다른 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길이 끝나 갈수록 지나친 절에서 사진을 더 많이 촬영하지 못하고 좀더 천천히 절을 둘러보았으면 하는 미련이 남으면서 언젠가는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도보는 아닐수도 있겠지만 시코쿠의 헨로미찌를 밟아 볼 기회를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는 혼자가 아니길 기원해본다. 12시 반이 넘어가는데 잠이 안온다. 아침예불 참석하고, 짐 챙기고 하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