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순례 - 40일차(11월 19일)
지난밤에 달이 밝게 보이다가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다. 날씨가 변화무쌍 하다. 아침에 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일어나니 다행이 비는 오지 않는다. 그래도 산속의 절이라서 날씨가 쌀쌀하다. 아침 예불을 드리기 위해 본당엘 가니 난로가 피워져 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법당에서 아침예불을 올린다. 더듬더듬 일본어로 반야심경을 따라 해 보는데 쉽지가 않다. 그리고 주지스님께서 법문을 주시는데 이건머 제대로 알아 들을수가 없으니 아쉽다. 좋은 말씀이셨으려니 한다. 예불을 마치고 조용히 구석에서 삼배를 올리며, 이곳까지 무사히 오게 해주신것을 감사 드리고, 이길을 걷고 있게 해주심에 감사 드리고, 무사히 이 길을 마치길 기원한다. 그리고 더불어 내속의 아귀의 마음을 떨어 버리려고자 기원을 하였다. 순례길에서 이렇게 삼배를 올려보기는 처음 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숙박비를 계산하는데 교통안전이 쓰여져 있고, 금강저가 그려져 있는 스티커 등을 기념품으로 건네 주시며, 무사히 순례를 마치기를 기원해 주신다. 그렇게 배웅을 받고 맑은날씨의 길을 나선다. 11월도 중순을 넘어 하순으로 들어가니 날도 제법 쌀쌀해지고, 거기다가 산속이라 바람도 차다. 슬슬 겨울로 들어가는것 같다.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고쿠분지로 향한다. 아침나절 산을 내려와서 시골길을 걷기를 한시간 반정도 고쿠분지가 눈에 들어온다. 에히매로 들어와서는 도시들이 거의 붙어 있어서 늘상 도시를 걷고 있다.
제 59번 고쿠분지의 전경
제59번 고쿠분지 본당
제59번 고쿠분지 대사당
고쿠분지의 유명한 악수대사
센류지에서 식사때 만나서 요코미네지 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던 순례자(모처럼 영어가 되는 일본분 이었다.)
어제 저녁에 슈쿠보에서 만난 영어가 되는 일본 여자분과 그 일행인분과 59번 절까지 동행을 했다. 동행이 있으니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며, 순례길에 대한 공부도 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모처럼 동행이 있으니 길이 즐겁다. 워낙 천천히 걷는 분들이라서 별 무리없이 동행하고 59번 절에서 사진을 찍고 헤어졌는데 하루가 마무리될 무렵 별격 11번 절 앞에서 그리고 60번절 가는 길목 편의점에서 두번을 다시 반갑게 해후를 하였다.
길은 계속 기차길을 옆에 두고 이어진다. 한량씩 두량씩 다니는 기차의 모습을 보니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시골에 승객이 적은 역들도 없애지 말고 이렇게 한량, 두량씩 드문드문 이라도 운행을 해 준다면 지역주민들도, 관광객들도 편리하고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걸어 점심을 넘겨서 별격 제10번 교류지에 다다르자 마자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지 또 비가 쏟아진다. 잠시지나가는 소나기처럼 느껴지지만 그것도 아닌것 같다. 제법 산으로 올라가는 곳인데 또 비를 흠뻑 맞으며, 올라가겠구나 싶다. 하루라도 비가 안오면 이제는 뭔가 허전하게 느껴지는것이 비와도 많이 친숙해 진듯 하다.
차길에서 동네길로 접어들어 조금 올라가니 코류지의 산문이 보인다. 지도에는 제법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산문이 보이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별격 제10번 코류지의 산문
산문을 지나서 보니 역시 산문뒤로 언덕과 계단이 주욱 이어진 모습이 보인다. 역시 산문은 페이크 였다.
별격 제10번 코류지 경내
별격 제10번 코류지 본당
별격 제10번 코류지 대사당
별격 제10번 코류지 대사당 과 목탑
절에 도착을 하여 참배를 하고 납경을 마치고 나니 비가 그친다. 판초를 입고 걷는사이 온몸이 땀에 젖었다. 이런날은 맑은날보다 훨씬더 많이 지치게 된다. 납경소에 납경을 하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과자와 사탕을 오셋타이로 건네 주신다.
산을 내려와 별격 제11번 이키키지조로 향하는길에 다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급하게 문이 열려있는 차고로 잠시 비를 피하였다. 비가 그치를 바래보았지만 그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기에 다시 판초를 챙겨입고 길을 나선다. 오전의 맑은날씨가 종일 가길 바랬건만 그 바램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대로 이키키지조까지 꼬박 비를 맞으며 도착하니 길가의 작은 절이다. 생목지장보살이 유명하다고 하여 제법 규모가 있을줄 알았는데....
별격 제11번 이키키지조 경내
별격 제11번 이키키지조 본당 과 대사당
별격 제11번 이키키지조 생목지장
참배를 마치고 납경을 다 받도록 비가 그치질 않고 계속 내린다. 거기다가 시간도 4시가 다 되어 가니 슬슬 어둠이 내려않는 시간이다. 오늘은 요코미네지 가는길에 휴게소에서 텐트를 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해가 떨어지기 전에 거기까지 도착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급하게 길을 채촉하여 지도에 보이는 편의점에 오니 5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다. 가로등이 길을 밝히고, 도로의 자동차 들도 모두 전조등을 켜고 움직인다. 그나미 길이 외길이라 길은 잃지는 않을것이지만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산길이라는 것이 더욱 부담스럽다. 헤드렌턴을 챙기고, 구입한 음식들을 갈무리 하여 허겁지겁 한시간여를 걸으니 멀리 가로등 아래 휴게소가 보인다. 날은 이미 캄캄하고, 휴게소 근처에는 물도 화장실도 아무것도 없이 그냥 길가의 정자인데 그 가운데 의자까지 움직이질 않게 해 놓아서 텐트치기가 참 애매하다. 그래도 바닥이 종일내린 비에 젖어 있고, 비가 예보 되어 있기에 어거지로 텐트를 치고, 식사를 해결하였다.
텐트안에 들어와 있으니 어쩌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동네 강아지 짖는 소리와 강하게 부는 바람소리가 사람을 더욱 심난하게 만든다. 조금있다 보니 경광등을 켠 차가 한대 오더니 휴게소쪽으로 헤드라이트를 비추고 잠시 살펴보더니 그대로 돌아간다. 아마도 세워놓은 즈에와 오이즈루를 보고 순례객이라서 그대로 돌아가는것 같다. 그 경광등을 단 차는 주기적으로 밤새 내가 텐트를 친 휴게소까지 몇차례를 둘러보러 올라 왔다.
사람의 인연 이라는것이 만남과 이별이 영원한 것은 없을 것이다. 아시즈리미사키의 민박집 구모모 에서 잠시 스쳤던 사람을 다시 슈쿠보에서 만나기도 하고 고쿠분지에서 작별을 고했던 순례자와 아키키지조에서 그리고 편의점에서 계속 다시 만나게 되었다. 돌고 도는 인연을 가지고 사는 삶에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삶인가 보다.
비가 내린뒤에 산길로 접어들어 그런지 많이 추워진다. 포켓난로를 꺼내 등에 대고 누웠다. 따뜻하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날씨인데도 텐트안에 들어오면 그래도 공간이라고 바람도 없고 아늑하다. 잠을 자려는데 비오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어제 밤에도 비가 무척 많이 내리더니 오늘도 똑같은 상황이다. 내일 산길이 걱정이 된다. 요코미네지 가는길은 지도에 헨로고로가시로 표시되어 있고, 비온후 에는 길이 끄럽고 힘든길이라는 쓰여있다. 밤에 비라도 내리지 않아야 길이라도 편할텐데 걱정이다. 그래도 그 걱정은 내일 일이니 닥치면 헤쳐나갈 길도 있겠지 라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장마나 태풍처럼 오는 비는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