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순례 - 33일차(11월 12일)
밤새 바람이 창문을 흔들며, 산사에서 하루밤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일어나서 침을 챙겨 밖으로 나와보니 날씨가 완연히 만추의 날씨로 접어 둘었다. 쌀쌀한 새벽 산속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낮에도 배낭을 메고 걸어도 춥다. 몇일전과는 확연히 다른 날씨를 보인다. 산을 내려오는데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기 싫어서 지도를 보니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도 될듯하여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길이 갈림길이 나오는데 뭔가 이상하다. 그래도 방향을 가늠하여 걷는데 지나가는 차한대가 없다. 한참을 걸어 가는데 트럭이 한대 와서 길을 확인하가니 다시 순례길이 나온다.
산을 내려와서 오즈시에 들어왔다. 하늘은 흐리고 비가 내리지 않을까 염려가된다. 도시엔 늘 네트워크가 연결되고, 큰 마트들이 있고 분주함이 있다. 한편으로는 번잡함이 있고,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인터넷을 연결하니 한국은 아침에 영하로 떨어진다고 안부를 묻는 말들이 많이 카톡으로 와 있다. 점심먹고 쉬면서 일일이 답장을 해 주었다.
가마우지 고기잡이로 유명한 하지가와 와 오즈성
오즈시를 거의 벗어날 무렵 나타나는 강가와 멀리 보이는 산위의 오즈성 그리고 멀리 보이는 오늘 내려온 산의 모습이 함께 어우러지며 잠시 바라보게 만들어 준다. 저 강변에 텐트치고 몇일 망중한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흐린하늘에 비가 내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길을 걸어 오즈를 완전히 벗어날 무렵 별격 8번 도요가하시에 도착을 하였다. 도요가하시는 공해대사께서 다리밑에서 주무셨다는 유명한 곳이다.
별격 제8번 도요가하시 본당
별격 제 8번 도요가하시 전경
도요가하시에서 바라보는 다리밑 공해대사상
다리밑의 모습
도요가하시에서 대사님의 와상을 보며 참배를 하고, 나도 이곳에서 하루 노숙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유서깊은 이 절의 츠야도 에서 하루 머물러 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참 여러가지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이르다. 이제 겨우 점심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에히메현으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도시와 도시사이에 경계지점에서 완전히 끊어지는 느낌보다는 계속 도시가 서로 확장되면서 이어지는 모습이 고치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우치코초로 넘어가는 길인데 차량들도 많고, 계속 이어지는 대형상점들 그리고 그곳을 드나들기 위한 차량을 위해서 인도에 차량 통행이 가능토록 낮추어 놓아서 걷는데 의외로 계속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 듯한 피곤함을 가져다 주며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렇게 오후시간을 걸어 유명한 칸난도우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전통 목욕시설이 있는 간난도우 휴게소
간난도우에 도착을 하니 구름이 걷히면서 잠시 햇볕이 나온다. 그것도 잠시 금방 석양빛을 내며 날이 저물어 간다. 해가 점점 짧아지고 동지가 가까워 오니 오늘 같이 구름이 많이 낀날은 4시가 좀 남었는데도 어두워서 불안해 진다. 한시간 반 정도를 더 걸으면 미치노 에키인데 국도변을 걷는것이 부담스러워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남의 나라에서 해가지고 어두워 지는 경험으로 한번 고생을 해보니 이젠 완전히 뇌리를 지배 하는것 같다. 오전에 하산하면서 급한 경사에 아무래도 무릅에 무리가 온것 같다. 쉬면서 마사지를 계속 하는데도 통증이 지속된다. 5시쯤 되어 퇴근시간이 가까워오니 휴게소 앞의 건설회사에 직원들이 퇴근을 위해 귀사를 한다. 가서 오른 하루 신세를 지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일본전통 목욕시설이 있으니 얼마든지 사용하라고 한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물을 데우고, 다시 사용한 물을 치우고, 아궁이를 청소를 할 생각을 하니 깔끔하게 그냥 목욕을 포기 하게 된다. 30분 사이에 날이 금방 캄캄 해 지더니 도로에 늘어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퇴근시간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또 여지없이 갑자기 소나기 처럼 비가 내린다. 도대체 가을이 맞긴 한건지. 더불어 이런 환절기가 되면 늘상 격는 비염도 겁이 난다. 약을 준비해 오긴 했어도 하루저녁 잠잘때 관리를 잘못하면 일주일 이상 무척 고생을 하게 되는데 조심 해야 겠다.
이제 밤기온도 10도 아래로 떨어지며, 침낭속이 따뜻하고 침낭 밖으로 나오면 덜덜 떨린다. 낮에도 15도 내외이니 관리를 좀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결국 4시반면 걷는 것을 마무리 해야 할 시간이니 결국 하루에 6시반부터 4반 이라고 해야 10시간 쉬는 시간감안하면 하루 20-23키로 내외의 거리인데 쉽지가 않다.
오늘은 국도변 휴게소에서 텐트를 치니 차소리와 기차소리가 계속 들리고 헤드라이트 불빛이 텐트밖으로 어지럽게 비쳐진다. 마음이 심난 하다. 춥다. 순례 처음엔 침낭을 덥고 있으면 땀이 났는데 지금은 따뜻하다. 일기의 변화가 확실히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기면 추운날씨에 침낭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지는 것을 보면 겨울이 오긴 오는가 보다. 준비한 옷이 걱정이다. 남쪽이라 따뜻할 것을 예상 했는데 의외로 산속이다 보니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돌아가긴 할것이다.
무릅과 함께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이상하게 느낌이 없다. 이렇게 많이 걸어본적이 없으니 그런 영향을 더 받는 것일까? 겁도 나가도한다. 몇일을 쉬어볼 여유가 없으니 확인해 볼 방법도 없으니 답답하다. 내 복잡 했던 머리속이 많이 정리는 되어가고 있긴 한데 전번처럼 전화 한통화에 무너지는 일만 없으면 버틸수 있을것도 같기는 하다. 하여간 시간이 약이겠지. 오늘밤에 비가 왔으니 내일은 맑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