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순례 - 30일차(11월 9일)
어제밤을 보냈던 숙소에서 짐을 정리고, 길을 나선다. 버스정류장에 보니 어제 그 독일 순례자는 보이질 않는다. 아침일찍 출발을 했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버스정류장이니 첫버스가 다니기 이전에는 움직였으리라.
지도를 보니 도로를 따라가는 길과 산을 넘는길 두개로 길이 나뉜다. 헨로미찌 표식은 바닷가를 따라가는 국도를 가르키고 있다. 주저없이 바닷가의 국도를 따라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지도를 유심히 보니 순례길이 터널 옆으로 표시가 되어있다. 지도 인쇄가 잘못 되었는줄 알았는데 터널에 도착을 해보니 차량용 터널과 자전거 및 보행자용 터널이 분리되어 있다. 지도가 틀린것이 아니었고, 보행자를 위한 교통시설에 감탄을 할 뿐이다.
터널을 나오니 바다가 보이는데 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날도 흐리다. 비 예보는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국도길을 걸어 내려오니 공원이 보인다. 더불어 공원안쪽에 불을 피울 수 있는 바베큐장 까지 있고, 길 건너편엔 캠핑장까지 있다.
가시와자카가 아니었다면 어젯밤은 이곳에서 보냈을것 같다. 이런 공원들을 볼때 마다 부럽다. 넓은 잔듸밭과 바베큐장 시설들.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하며, 서로가 깨끗하게 관리해 주는 모습들을 보면서 더불어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잠시 스치고 지나간다.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신사
바다가 대양을 접하지 않고 만으로 들어오니 잔잔해서 인지 양식장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남해의 다도해 해안에 양식장들 같다. 그 해안가 작은 암초위에 아주 작고 앙증맞은 신사가 하나 세워져 있다. 일본에서 항상 느끼지만 신사는 왠지 정이 안가고 하지만 이 신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점심무렵이 좀 지나서 마쓰오 터널앞에 이르니 터널과 창고같이 생긴 사진에서 봤던 익숙한 젠콘야도가 눈에 들어온다. 시간이 늦었으면 이곳에서 하루 묵어 갔겠지만 점심무렵이 약간 넘은시간이라서 눈으로 보며 지나친다. 여기서 산길과 도로길로 길이 갈리는데 몸이 힘드니 조금이라도 덜 오르막이 있는 터널을 지나는 도로길을 주저없이 선택하여 매케하고 답답한 터널이지만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비쳐오는 빛을 희망삼아 묵묵히 걷는다. 작은 희망의 빛줄기가 걸을수록 점점 커지며, 그 끝을 보게된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길을 걷다 보니 도로변에 바위들을 쌓아놓아 넓직한 바위가 앉아서 쉬기 좋게 보이기에 주저없이 앉아 버렸다. 잠깐 쉬었다고 생각한것이 한참을 잠들었던 가보다. 시간을 보니 3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이제 1시간 남짖이면 날이 어두워 질 것인데 오늘 묵을 숙소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도시로 들어가면 공원같은곳 이외에는 노숙할 곳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내일 비예보가 있어서 지도를 보니 그나마 우와지마 유스호스텔이 가격이 저렴하기에 공중전화로 서둘러 예약을 하니 다행이 침대가 남아 있다.
길을 걸으며 도시에 접근하는 외곽에 과거에는 무척 화려했을것 같고 주차장도 무척 넓은 건물을 보면 대부분이 영업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용도였을까 하고 근처에 다다라 살펴보니 파친고 건물이다. 경기가 좋았을때의 영화가 이제 허무하게 폐허비슷하게 남아있는 건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든다.
지도를 보면서 걷는데 내가 느낀 거리감과 지도의 거리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전페이지의 지도와 한참을 들여다 보니 지도의 축척이 다르다. 그러니 앞에지는 한참을 걸은듯 한데 지도상에서는 짧고 지금 페이지는 얼마 안걸은듯 한데 지도상에 움직인 거리는 길다. 축척의 차이를 걷기 시작한지 한달만에 인지 한것이다. 도대체 이런 경우가 있을수 있나. 학교시절 부터 해왔던 오리엔테어링들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항상 고정된 축척의 지도만 사용했던 습관이었을까? 하여간 무엇인가를 할때는 기준에 대한 점검을 다시 해봐야 할것 같다.
5시가 다되어 가니 이미 해는 기울고 자동차 들도 전조등을 밝히고, 가로등도 들어 오기 시작을 한다. 어두운길을 도저히 지도에만 의지하기가 힘들어 진다. 다행이 도시지역이라 네트워크 접속이 가능하기에 접속하고, 구글맵으로 길찾기기능을 작동해보니 한국에선 안되던 네비게이션 기능이 일본에서는 사용이 가능하다. 이제부터는 구글맵이 알려주는대로만 따라가면 되니 길찾기에 대한 스트레스는 좀 덜고, 주택가의 좁은 골목을 돌아돌아 유스호스텔을 찾아간다.
거의 다 도착해서 보니 유스호스텔의 이정표가 산위로 올라가는 길을 가르친다. 다와서 도대체 이것은 무슨 시련인지. 그래도 가야할길 걸어걸어 올라가니 우와지마시의 작은 산위로 안내를 한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하루를 정리한다.
생활이 단순해 지니 머리속도 단순해 지고 사는것도 단순해 진다. 이렇게 하면서 복잡한 것들을 모두 버리고, 내안의 에너지를 다 쏟아 내어 밑바닥까지 치고내려가면 좋겠다. 그 밑바닥에서 힘찬 도약으로 다시 올라올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