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시코쿠순례

시코쿠 순례 - 16일차(10월 26일)

푸른바람을 따라서 2014. 5. 6. 02:30
아침에 일찍이 눈을 뜨니 태풍이 지나고난 자리에 날씨가 아주 쾌청하고 맑은 전형적인 가을 하늘 날씨를 보여준다. 약간의 구름은 남아 있지만 이제부터 날이 당분간 맑은 날씨가 이어질것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짐을 모두 챙기고 출발을 하고자 이틀간 묵었던 숙소에 인사를 하니 여주인께서 직접 준비하신 오니기리 2개를 챙겨 주시며 메모를 내미신다. 한국인임을 배려하여 서툴게쓴 한글을 보며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이 메모를 소중히 보관하였는데 돌아와 보니 없어져 버렸다. 정말로 아쉬웠다. 메모의 내용은 "순례를 잘 마치길 바란다. 오니기리 맛있어요" 였다. 자동번역에 의지하셔서 주신 메모 였지만 이렇게 낮선 순례객을 위하여 기꺼이 방을 내어주시고, 배웅해 주시며, 힘내라는 메모까지 한글로 주시는 정성에 큰 감동을 받고 깊이 머리숙여 인사하고 길을 나섰다.

일이층 모두 베란다가 보이는 흰집에 이틀간 보냈던 야마모토미노소


모처럼 날씨가 아주 화창하고 상쾌한 가을기분을 만끽하며, 기분좋게 즐겁게 걸었다. 하루를 푹 쉬고나니 걷는 발걸음도 가볍다. 코노미네지를 가기위한 산길로 길을 접어든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휴일을 즐기려는 외국인들이 많이 눈에 띄인다. 지도를 보니 헨로고로가시라고 적혀있어 길이 험할까 염려는 되지만 그래도 산의 높이가 400미터 수준이라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데 모처럼 맑은 하늘과 햇볕이 반갑고 즐겁기만 하다. 그렇게 산을 오르다 보니 코노미네지 산문이 보인다.

제 27번 코노미네지 산문



코노미네지의 불상들



코노미내지 경내



코노미네지 본당(몇 안되게 본당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었다.)


코노미네지 경내


코노미네지 대사당


코노미네지 츠야도 일정이 괜찮으면 하루 묶었으면 싶다.


위쪽에서 바라본 코노미네지와 바다


이곳의 물이 아주 좋은 물이라는 설명에 한모금 마셔보니 물맛이 시원하고 참 좋다. 납경을 하니 납경소에서 과자를 오셋타이로 건네 주신다. 휴게소 앞에 앉아서 모처럼 맑은 날씨의 가을정취와 산사를 느끼며 한참을 쉬었다.

코노미네지를 내려오는길에 가을 햇볕이 점점 뜨거워 지기 시작을 한다. 산길을 내려와서 길을 걷다 보니 셋타이소라는 간판이 보인다. 시원한 물이라도 한모금 얻어 마시려고 입구를 찾아 기웃거려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들어가보니 중기회사 사무실이다. 소파에 자리를 안내 하더니 외국인인 나를 배려해서 인지 쿠르고히 오아 호토고히 라고 알아듣기 쉽게 말씀을 해주시기에 냉큼 쿠르고히를 부탁하니 금방 얼음을 넣은 시원한 커피와 과자를 내어주신다. 앉아서 다리를 쉬면서 먹고 있으려니 막 점심을 드시려 했던지 닭죽을 한그릇 더 가져다 주신다. 한국에서 먹던맛과 똑같은 맛이다. 감사하게 그릇 바닥까지 싹싹 비우고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기념품을 하나 드리니 오히려 더 고마워 하시는 모습에 나도 어쩔줄을 몰랐다.

오후가 되며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해안길에 근사한 카페가 보인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떨쳐 버리기 힘든 유혹 이었다. 2층에 위치한 카페에 올라가니 연세가 지긋이 보이는 분이 계신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커피를 주문하니 이젠 한국에선 보기 힘든 사이폰으로 커피를 추출하여 주신다. 모처럼 느끼는 커피의 향과 입안에 감도는 맛이 잠시 황홀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져들게 한다.

오래된 사이폰으로 내린 커피를 맛보았던 카페


카페의 창밖으로 아키시가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이다. 계속 이어지는 해안길이 단조롭긴 하지만 이렇게 길가에 작은곳들이 즐겁게 만들어 주는 길을 느낀다. 

길을 걸으며 쉬며 하는 중간에 도로변에 휴게소가 나타난다. 화장실도 사용할 겸 들러서 보니 귤을 아주 싼값에 팔기에 한봉지를 사서 쉬면서 먹고 있지니 몇일전에 숙소에서 뵈었던 연세드신 헨로부부께서 걸어가신다. 불문곡직하고 맨날로 쫒아가서 귤을 몇개 건네드렸다.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가 나이들어 그렇게 다정히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들어서 일까. 순례길 처음에 만났던 많은 도움을 받았던 부부와 함께 너무나도 부러운 모습의 부부였다. 숙소에서 남편을 위해 사케를 주문해 주시던 아내분의 모습과 아내의 힘듦을 염려하며, 챙겨 주시던 남편분. 이분들께 귤이라도 몇개 드리고 싶었다.

걸어온 지난길을 뒤돌아보다(멀리 무로토곳이 보인다.)


오후내내 걸어서 아키시가 가까워올때쯤 뒤를 돌아보니 걸어온 길이 무척 멀어 보인다. 3일전에 들렀던 무로토곳이 아주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꾸준히 무엇인가를 계속 햇던 것에 대한 보람이 느껴진다. 

아키역에 도착을 하여보니 관광안내소가 있고 무료인터넷을 제공해 주기에 주저 앉았다. 그런데 안내소에서 제공해 주는 무료 와이파이보다 국내에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Fon 이라는 네트워크가 잡힌다. 한국에 있을때 Fon AP를 설치하고 가입하였던 것이 기억이 나서 접속하여 로그인을 하니 무료로 개방된 인터넷 보다 훨씬 좋은 상태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집에도 연락을 하니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먼저 연락한번 없는것이 못내 아쉽긴 하다. 아키역을 지나 신발가게가 있어 들어가 보니 등산화가 7,000엔인데 바닥창이 얇아 별로 마음이 들지를 않는다. 생각보다 빨리 닳는 바닥창에 이 얇은 창이 순례끝까지 버텨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하루이틀 더 걸어 고치의 몽벨샵을 들러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한참을 쉬었는데도 아직은 해가 많이 남아서 좀더 걷기로 한다. 해안가를 타고 계속 나있는 자전거 도로가 걷기에는 일반 국도 보다는 훨씬 편안하다. 차소리와 위협도 없거니와 모두들 빨라야 자전거 이다 보니 느림의 미학이 느껴진다. 니시분역 근처의 젠콘야도를 찾아가는 도중에 해가 빨리 저물며 어두워 진다. 지도를 살피니 와지키역 근처에 휴게소가 하나 있기에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생각을 한다. 대략 30분정도만 더 걸으면 젠콘야도도 있겟지만 오늘은 왠지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내고 싶어 졌다. 휴게소 근처에 슈퍼도 하나 있고, 바로 길건너에 편의점도 있다. 슈퍼에서 야끼소바와 닭튀김으로 저녁을 사고 바나나도 간식으로 한 덩이를 구입하였으며, 내일 아침은 근처 편의점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텐트를 치고 자면 딱 하나 불편한것이 저녁에 땀에 젖은 몸을 제대로 씻을 곳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침에 세면은 편의점이나 화장실에서 해결을 하면 되지만 샤워할 곳이 근처에 온천같은 곳이 없으면 쉽지가 않다. 헨로휴게소가 국도변에 바로 위치해 있다 보니 차소리와 그 차소리에 짖는 강아지들의 소리가 크다. 확실히 시골이라서 그런지 별이 많이 보인다. 국도변의 버스정류소를 겸하고 있는 휴게소라 내일 일찍 일어나서 텐트 걷어야 한다.

이번 순례를 하면서  참 신기한게 아침 7시 12시 오후 3시쯤 그리고 밤 9시에는 꼭 알람이 방송된다. 시계가 없던 시절의 관습이겠지 싶은데 아직도 국가가 국민의 생활을 통제하고 국민들은 그에 따라 기계적으로 행동한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확실히 국도변이라 지나는 차소리에 그리고 노숙이라는 마음의 부담이 있는지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젠콘야도에서도 문을 잠그고 해야 잠을 좀 잤는데 역시 사람은 울타리에 대한 안정감이 큰것 같다. 벤치에서의 노숙과 텐트의 차이와 같다고나 할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없는 모양이다. 처음엔 텐트칠 자리만이도 그러다가 이슬을 피할수 있는곳을 찾게 되고 몇일 민슈크와 료칸 등에서 편히 지내니 노숙이 힘들어 지는지 싶다. 이렇게 또 몇일 생활하다보면 다시 익숙해 질 것이다.